混沌과 變化

“天下에 文의 가장 위대한 형상화는 바람, 구름, 비, 그리고 번개이다. 그것들의 변화와 변형은 헤아릴 수 없으며 한계나 경계는 없다. 그들은 우주와 文의 완성에 있어서의 神의 가장 고차원적 顯示이다.”

(葉燮, 「原詩」, 卷一, “天地之大文 風雲雨雷是也. 風雲雨雷變化不測 不可端倪 天地之至神也. 卽至文也.”)

淸代 문학 비평가인 葉燮(1627-1703)은 변화의 원리를 근본으로 ‘살아있는’ 법칙(活法)과 작품에 대한 그의 사상을 ‘泰山을 휘감는 구름’의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이는 동양 미학 상 주요한 표현인 文(형식)의 多義性이며 아름다움, 균형 잡힌 양식의 구성 등을 의미한다. 그 어떠한 이론 보다 생생한 이 이미지는 위대한 詩 또는 예술에 있어서의 동양의 전통 미학적 理想을 설명해 준다.

작가 한동호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어떠한 법칙 속에 가두려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엽섭이 말했던 活法으로서의 법칙이 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는 紙筆墨을 버리고 아크릴을 사용함으로써 변화에의 욕구를 몸소 표현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과정일 뿐이다. 마치 구름처럼 검은 화면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그의 線描는 나와 너, 이것과 저것, 동양과 서양이 섞여 들어가는 ‘melting pot’의 心象을 지니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는 삶의 단순함 속에 숨겨져 있는 화려함에 대한 인식이 엿보이기도 한다. Paul Smith의 디자인처럼 모노톤 사이에서 언뜻 비치는 화려한 옷감의 매력을 연상시키는 작품의 側面 彩色은 그러한 의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한편 사회적 제약이나 자기 검열에 의해서 한없이 자기 목소리를 숨기고 살아가지만, 그 外延의 깊숙한 한 곳에 각자의 개성과 욕망이 어지럽게 자리하고 있는 현대인의 심리를 꼬집고자 하였다. 구태의연한 이야기지만, 이는 곧 쉽사리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기 자신의 욕구와 희망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볼 때 단조로운 삶 사이로 갑작스레 찾아오는 화려한 사건, 모르고 지나쳤던 매력의 우연한 발견은 우리를 즐겁게 하기도 한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심상인 기억 속 풍경과 추억의 反芻는 그의 前作에서부터 끊임없이 나타나는 주요 모티브이다. 작품의 명제로서 쓰인 <이야기>, <기다림>, <떠난 자리>, <꽃>, <心> 등의 일상적 언어들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그림의 분위기를 전환시켜 준다. 이러한 요소들이 그야말로 들끓는 용광로 속에 스며들듯이 다시금 아련한 실루엣을 형성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심상의 변화에서 재료, 조형의 변화까지 모든 것을 움직여 보려는 混沌의 과정 속에 있다. 이러한 복잡성은 작가 자신의 심리적 반영이면서도 재료의 혼용이 자아내는 물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의 다양한 시도들이 전통과 현대를 연결시키고 균형 잡힌 양식으로서 정립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순기능을 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더욱 정묘한 사색과 고뇌를 거친 훈련이 계속 된다면 그의 변화에의 움직임들은 살아있는 법칙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유윤빈(홍익대학교 미술학 박사)